형지, 샤트렌·올리비아하슬러 사업 정리 착수
LF, 액션스포츠 중단…'리복' 의류 생산도 안 해
[어패럴뉴스 오경천 기자] 레거시 패션업계에 대규모 브랜드 정리 바람이 불고 있다.
수십 년간 사업을 이어온 장수 브랜드부터 불과 몇 년 전 의욕적으로 시작한 신규 사업까지, 수익성과 성장성이 떨어지는 브랜드를 과감하게 정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이고 있는 곳은 패션그룹형지다.
형지는 여성복 '샤트렌'과 '올리비아하슬러'의 사업 정리에 들어갔다.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상품기획, 디자인, 생산, 소재 등 상품 관련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제안했고, 대부분 9월 말까지 근무한 뒤 퇴사할 예정이다.
'샤트렌'과 '올리비아하슬러'는 한때 간판 브랜드 '크로커다일레이디'와 함께 여성 어덜트 시장의 핵심 브랜드로 자리 잡았던 만큼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형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3개 브랜드의 상품과 영업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는 등 효율화 작업을 단행한 바 있다. 지난 5월에는 자사몰 '형지몰'을 리뉴얼하며 크로커다일레이디·샤트렌·올리비아하슬러를 한곳에서 판매하는 통합 운영체제도 구축했다.
하지만 '샤트렌'은 적자가 장기간 이어져 왔고, '올리비아하슬러'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적자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소속 브랜드들의 수익성을 떠나, 송도 복합센터 등 회사 차원의 부동산 투자에 따른 부채 증가로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이같은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실제 패션그룹형지는 지난해 수십억의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지만, 금융 이자 비용 등 영업 외 비용으로 당기순이익은 적자를 냈다. 올해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성 부채 탕감을 위해 최근 포이동 빌딩, 양재동 토지, 부산 아트몰링 등 회사가 보유한 부동산 매각에 나선 데 이어 주력 브랜드 정리에 돌입한 것이다.
대형 패션기업들은 미래 성장에 초점을 맞춘 체질 전환을 위해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성격이 강하다.
LF는 자회사 비알케이컴퍼니를 통해 전개해 왔던 빌라봉·퀵실버·록시 등 액션 스포츠 사업의 중단을 결정했다. LF는 2024년 별도 법인을 설립하고, 글로벌 패션기업 어센틱브랜즈그룹(ABG)이 보유한 빌라봉, 퀵실버, 록시, 루카, DC슈즈, 엘리먼트 등 6개 브랜드의 국내 사업을 맡아왔다.
LF는 이어 '리복' 사업도 정리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 봄 시즌부터 자체 기획해 온 의류 생산을 중단하기로 내부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26 FW 신상품 판매와 신발 수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향후 운영 계획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LF는 2022년 4월 ABG와 리복의 국내 사업권 계약을 체결하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이효리를 브랜드 앰배서더로 발탁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펼쳤지만, 국내 스포츠 시장에서 기대만큼 외형을 키우지 못했다. 매장 수도 30여 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블랙야크'를 전개 중인 비와이엔블랙야크는 한발 앞선 지난 4월 골프웨어 사업 '힐크릭'의 26 FW 신상품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2018년 국내 사업을 시작한 지 약 8년 만이다. 이어 지난 7월 1일부로 브랜드 운영 법인을 엠엠티아이앤씨(MMT I&C)로 변경하면서 직접 전개해 온 골프웨어 사업을 사실상 정리했다. BYN블랙야크 공식몰 내에서도 힐크릭 상품 판매를 종료했다.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브랜드를 정리하는 기업들의 의사결정이 과거보다 훨씬 빨라지고 과감해졌다는 점이다.
과거 대형 패션기업들은 신규 브랜드를 런칭하면 단기간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5년 이상 사업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업이 일정 규모에 도달하기까지 발생하는 초기 손실을 투자 과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장수 브랜드는 더욱 정리하기 어려웠다. 수십 년간 구축한 유통망과 대리점주와의 관계, 기존 고객, 조직과 인력 등 사업 기반이 갖춰져 있어 실적이 주춤하더라도 추가 투자를 통해 반등을 모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내수 패션 시장의 성격이 크게 달라진 데다 저성장이 장기화되고 고정비와 재고 부담이 커지면서 매출 외형보다 영업이익과 현금흐름, 재고 효율을 우선하는 경영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낮은 사업에 추가 자금을 투입하기보다 빠르게 걷어내고 경쟁력이 높은 핵심 브랜드에 자원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 성장기에는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는 것이 기업 성장의 방식이었다면, 저성장기에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을 얼마나 빨리 정리하고 핵심에 집중하느냐가 중요하다"며 "핵심 사업까지 흔들리기 전에 저효율 사업을 걷어내는 선제적 구조조정의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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