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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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미 볼펜, 한성기업 '크래미' |
정부가 주식 시장 정상화를 위해 이른바 '동전주' 퇴출에 나섰다.
코스닥 상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가 총액 기준을 올해 1월 40억에서 150억 원으로 상향한 데 이어 불과 6개월 만에 200억, 내년 1월까지 300억 원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코스피는 이달 300억에서 내년 1월 500억 원으로 상향된다. 90일 거래일 동안 45거래일 연속 시가 총액 기준을 회복하지 못하면 상장 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액면 병합을 하더라도 병합 후 액면가 미만인 경우 상장 폐지 대상에 포함된다. 여기에 주가 1,000원 미만 종목도 상장 폐지 대상에 포함됐다.
이 기준에서 현재 상장 폐지 대상에 오를 기업은 200여 개로 추산되는데 상당수가 패션, 섬유, 유통 기업이다.
TBH글로벌, 비비안, 형지글로벌, 형지I&C, 배럴, 에스티오, 이월드 등 20여 개 기업이 위험 구간에 있다. 과거 스팩(SPAC) 방식으로 코스피에 상장된 기업까지 포함하면 패션 관련 대상 기업은 30곳 안팎으로 늘어날 수 있다. 동전주 기준으로 대상을 확대하면 더 늘어난다.
정부의 취지와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려했던 부작용도 하나둘 현실화 되고 있다.
최근 모나미와 한성기업은 상장 폐지 위기에 몰렸지만 기사회생했다. 모나미는 '대표 문구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개인투자자의 매수가 이어졌고, 게맛살 브랜드 '크래미'의 한성기업 역시 25년간 이어온 6·25 참전용사 후원이 재조명되며 소위 착한 투자로 다시 일어났다. 물론 매우 이례적인 사례이고, 이들 이후에도 지속성을 유지할 지는 미지수다.
패션 기업은 특성상 이런 반전 드라마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근 한 슈즈 유통 기업은 상장 유지를 위해 결국 합병을 선택했다. 매출, 이익 등 실적이 개선됐고 동업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가총액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랜드와 고용을 지키기 위해 독자 노선 대신 합병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업계에 한 획을 그은 자수성가한 기업인들이 생존을 위해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억울한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패션그룹형지 계열사 형지엘리트도 동전주 퇴출 압박이 커지면서 주식 병합 방식으로 방어에 나섰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이 퇴출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원리다. 다만 현재 기준이 산업별 사업 구조와 성장 방식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전 산업계를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위험해 보인다. 업종마다 규모와 이익 구조, 투자 비용 및 기간, 수익 구간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패션은 주식 시장에서 대표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는 업종이다. 시장을 조성하고 있는 기업들 대부분이 중소기업이고, 계절성과 아이템의 특성상 수익률이 낮고, 재고율도 높다는 게 투자 업계가 말하는 이유다. 이는 엄연한 업종의 특성이니 그로 인해 주식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것을 탓할 수만도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타이밍이다. 최근 푸드와 뷰티 등 한국산 소비재의 해외 수출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패션 수출액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2025년 7~12월) 대비 올 상반기(2026년 1~6월) 패션의류 수출액은 20.9% 증가해 증가율이 화장품 다음으로 높았다.
이 집계에 잡힌 해외 수출 뿐 아니라 인바운드 즉,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패션의류 구매액도 급증하고 있다.
자동차, 선박, 반도체 등 개발도상국형 제조 산업을 수출해 온 한국이 이제 소프트파워를 구축하며 소비재까지 인기를 끄는 나라가 되었는데, 이번 조치로 패션 중소기업들이 더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업은 투자를 위해 자금이 필요하고, 주식 시장은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내수를 넘어 해외를 바라보기 시작한 이때, 그런 기회가 차단된다면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부실기업은 걸러내되 경쟁력 있는 기업까지 위축시키는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다 유연하고 정교한 기준과 보완책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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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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