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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패션업체 임원이 "신규 사업을 구상 중인데, 해외 브랜드 IP를 빌려서 라이선스로 전개할지, 자체적인 브랜드를 만들지 고민"이라고 했다. 기자는 "그래도 인지도 있는 해외 브랜드 IP를 사용하는 편이 효율적이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요즘 10~20대들은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없다"며 "물론 브랜드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마냥 해외 브랜드라고 해서 동경하는 시대는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국내 패션업계에서 해외 라이선스는 가장 안전한 사업 방식 중 하나였다.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 브랜드 상표권을 확보해 의류 사업으로 확장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관심과 매출을 기대할 수 있었다. 브랜드의 국적과 역사 자체가 경쟁력이었고, '해외 브랜드'라는 간판은 소비자를 설득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영 제너레이션'은 이전 세대와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드라마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과거의 세대와는 다르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디지털 플랫폼에서 한국이 만든 영화와 드라마, 웹툰을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있고,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 시장의 중심에 서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경험했다. 기생충, 오징어게임, BTS, 블랙핑크의 성공은 한국이 문화를 수입하는 국가가 아닌, 세계적인 유행과 취향을 만들어 내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의 '2026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류 경험자 1인당 한국 문화콘텐츠 소비 시간은 월평균 14.7시간으로 2023년 대비 3시간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드라마, 예능, 음악, 웹툰, 영화 등 분야도 다양하다.
최근 열린 FIFA 월드컵 결승전 무대에서는 BTS가 세계적인 팝스타들과 함께 공연을 펼쳤고, '오징어 게임'의 배우 정호연은 트로피 세리머니에 참여했다.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의 중심에서도 한국 콘텐츠가 주인공이 됐다.
한국 소비자들의 자부심은 막연한 애국심이 아닌, 한국의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데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패션 생태계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10~20대가 열광하는 브랜드를 보면 국내 브랜드가 대다수다. 이들은 국내를 넘어 일본과 중국 등 해외 시장에서도 빠르게 팬층을 넓혀가고 있으며, 일부 브랜드는 글로벌 기업들이 먼저 협업을 제안할 정도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 브랜드가 경쟁력을 잃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나이키, 아디다스, 샤넬, 루이비통 등 독보적인 철학과 상품 경쟁력을 갖춘 브랜드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달라진 것은 소비자들의 판단 기준이다. 단순히 해외 상표를 의류에 붙이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브랜드가 어떤 철학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탄탄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국내에서는 그 헤리티지와 오리진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지 등의 분명한 설득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라이선스의 시대가 사라진다는 것이 아닌, 브랜드 운영 역량이 없는 라이선스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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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경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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