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길] 지능 보편화의 시대, AI를 이기는 사람의 '한 끗'

발행 2026년 07월 08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이성길의 '마케팅 바이블'

 

지그재그, 무신사 인스타그램 캡처

 

직무 경계를 아예 없앤다는 기업 뉴스가 나온다. 파격처럼 보이지만 시대적 변화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능이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한 사람이 하나의 직무, 하나의 전문성으로 일했다. 1인1직무다. 그러나 AI가 그 전문성의 장벽을 빠르게 낮추고 있다. 정산도, 코드도 옆에 두고 끌어다 쓴다. SK 최태원 회장의 말처럼 이제 1인 다(多)직무의 시대다. 한 사람이 바이브 코딩으로 서비스를 출시하고, 촬영부터 편집까지 AI로 혼자 끝내는 시대다.

 

그렇다면 모두가 모든 일을 어느 정도 해내는 시대에,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나는가. AX(AI Transformation) 시대가 원하는 역량은 두 가지다. 하나는 AI로 대체되지 않는 깊이, 곧 직관이다. 다른 하나는 AI를 끌어다, 혼자서는 못했던 일을 해내는 레버리지(지렛대), 즉 넓이다. 후자는 점점 AI가 보편화되면서 그 차이가 좁혀질 것이며, 직관이 결국 차이를 만들 것이다.

 

펼치는 일, 즉 익숙한 것들을 마구 이어 붙이는 건 AI가 잘한다. 그러나 AI는 학습한 데이터의 평균으로 끌려간다. 생성형AI는 기존 것들의 평균값을 조합하는 도구다. 창조가 아니라 재조합에 가깝다. 직관은 그 반대편에 있다. 평균에서 한 발 밖으로 나가는 일이다. 통계적으로 그건 이상치라, AI는 본능적으로 억누른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감성 동물이자, 비합리성을 가진 동물이라 때로는 이성적이지 않은 선택을 한다. 건강을 해친다는 걸 알면서 야식을 먹고, 안 될 걸 알면서 매주 로또를 사는 것처럼. 그래서 사람에게는 경험이 압축돼 의식하지 못한 채 결론으로 튀어나오는 직관이 있고, 거기서 생경하고 새로운 산출물이 나온다.

 

어떤 문제에 100가지 방향이 있다면, AI는 통계적 추론으로 가능성 높은 한 가지를 제시한다. 반면 사람은 자신과 같은 비합리적 동물이 무엇에 마음을 움직일지를 직관으로 짚어 한 가지를 제시한다. 설득 대상이 사람인 이상, 아직은 사람의 직관이 더 강하다.

 

그리고 직관을 활용한 산출물이 크리에이티브다. 크리에이티브란 익숙한 것들을 아무도 안 붙여본 방식으로 이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산출물이다. 없던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알던 걸 새로 잇는 일이다. 누구나 아는 재료를 낯설게 붙이는, 그 의외의 연결이 사람을 움직일 것이라고 직관으로 감지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다.

 

예를 들어 야채와 수세미를 이어서 상품을 만들고, 무신사와 지그재그를 이어서 마케팅을 전개하고, 비행 게임과 광고판을 붙여 광고 사업을 전개한다. 재료는 익숙한데 연결은 낯설다. 좋은 크리에이티브는 익숙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처음 봐서 눈이 멈추게 하는 것, 바로 '새로움×적합성'이다. 새로운 서비스를 제안하든, 마케팅을 하든, 상품을 개발하든,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러한 크리에이티브로 기존보다 더 매력적인 결과물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야채와 수세미부터 보자. 바이유어핸즈라는 브랜드는 토마토, 참외, 당근, 대파 모양의 수세미를 만든다. 실제 식재료를 그대로 옮긴 듯한 디테일에, 사면 빨간 양파망에 담아준다. 여기 있던 직관은 이렇다. 주방에 둘 물건이면 식재료 모양일 때 귀엽겠다는 직관, 양파망에 담으면 진짜 채소처럼 느껴지겠다는 직관이다. AI에게 수세미를 디자인하라고 하면 스펀지나 망사 같은 '수세미다운' 평균으로 수렴한다. 같은 주방의 정반대 물건을 겹쳐 보는 장난기는 사람의 몫이다.

 

지그재그가 자사 입점 1위 브랜드의 성수 매장 오픈에 맞춰 첫 오프라인 팝업을 열었는데, 하필 그 자리가 경쟁사 무신사 매장 바로 옆이었다. 무신사가 슬로건을 비틀어 도발하자, 지그재그는 무신사의 '다 무신사랑 해'를, '숙녀들은 무신사 말고 다 지그재그랑 해'로 받아쳤다. 무신사는 지그재그의 '무쉰사' 쿠폰에, '지긁재긁' 쿠폰으로 맞불을 놨다. 무신사를 '무쉰사'로 비틀면 웃기겠다는 직관, 양사 간 비방이 아니라 서로 놀리는 톤이면 화제가 되겠다는 직관이 담겨 있다. AI에게 경쟁사 옆에서 슬로건을 비틀어 도발하라고 시키면, '비방전은 리스크'라며 말린다. 선을 넘지 않으면서 웃기는 한 끗은, 사람만이 그을 수 있다.

 

피터 레벨스(Pieter Levels)는 40개 이상의 1인 스타트업을 직접 기획하고 개발해 성공시킨 세계적인 인디 메이커(Indie Maker)다. 그는 바이브 코딩으로 단 3시간 만에 비행 시뮬레이터 게임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는 게임 속 섬과 하늘에 기업들이 살 수 있는 광고 공간을 만들어, 한 자리당 월 5,000달러에 팔았다. 보통 게임으로 돈을 벌려면 인앱결제나 구독을 붙이는데, 게임을 주목해 모아 파는 광고 매체로 재정의한 것이다.

 

AI에게 게임 수익화를 시키면 결제·구독·확률형 아이템 같은 학습된 평균을 내놓지, '비행 게임 하늘에 광고 비행선을 띄워 팔라'고는 답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게임은 연 매출 100만 달러(월 8만7,000달러)에 도달했고, 32만 명이 그 안에서 비행했다. 3시간 만에 만든 건 AI이고, 비행 게임을 광고판으로 사업화한 건 사람의 직관이다.

 

인공지능이 보편화될수록 직무 전문성은 평준화될 것이다. 코딩을 몰라도 커서 같은 도구로 서비스를 출시하고, 세무·정산은 AI 에이전트가 자동으로 처리하며, 계약서의 1차 검토를 AI에게 맡기는 시대다.

 

누구나 1인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차별점은 결국 크리에이티브다. 직관을 가지고 어떤 영역이든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한 끗의 차이를 만드는 사람이 AX 시대가 기대하는 인재다. 이제는 특정 직무가 아니라, 무엇을 맡기든 직관으로 기존보다 더 매력적인 결과물을 빚어내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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